영상제작 업무에 인력이 부족해진 지 오래된 터라, 계속해서 면접을 보고 있을 때였다. 팀장은 종종 면접 시 지각을 하거나, 질문을 준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면접자에게 심리적 압박이 되는 질문을 많이 하곤 했다. 대부분이 '우리 영상제작자들은 하루에 영상 하나도 만들어낼 수 있는데, 당신은 할 수 있겠냐'는 등의 질문이었다. 이는 영상을 제작해 본 사람이라면 '하루 만에 영상 하나를 제작하라면 얼마나 업무강도가 높은 걸까' 하고 절로 생각하게 되는 발언이었다. 특히 면접 이후 면접자에 대하여 평가를 하는 자리에서 팀장은 일을 위해서라면 사생활마저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발언을 해서 나에게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그러던 와중, 팀장의 압박성 질문 때문에 전형을 포기한 사람들이나 피드백이 종종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 일은 인사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여 인사팀장과의 개인 면담시간을 요청했다. 이 또한 돌이켜보면 최악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인사팀장과의 개인 면담에서 나는 면접에서의 불편한 점과, 팀장과 관련된 여러 불만사항을 말했다. 뾰족하게 결론이 난 면담은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론 팀장과 잘 말해보라는 쪽으로 끝났다. (대부분의 문제가 팀장과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단 내 선에서 해결해 보고자, 이 면담 내용을 팀장에게 공유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인사팀장은 그러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크리에이티브팀에서 지속적으로 불만이 해결되지 않자, 회사 내 복지인 인사팀장과의 대화나 익명 건의함을 통해 불만을 자주 제기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팀장이 자주 지각을 한다는 제보도 있었다). 그러나 복지의 익명성은 지켜지지 않았다. 나의 면담내용과 함께 타 팀원의 불만사항이나, 익명 건의함의 내용이 팀장에게 전달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두 가지 큰 충격을 받았는데, 첫 번째는 인사팀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과, 두 번째는 회사 복지로서 제공되고 있는 인사팀장과의 대화나 익명 건의함으로 제출한 불만이나 건의사항이 모두 익명으로 처리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팀장은 자신에 대한 불만사항을 듣고 난 이후 마케팅팀에게 '태도 점수'라는 것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개인면담에서 들은 이 태도점수란 것은 팀장이 생각하기에 태도가 불량하거나, 불만사항을 팀장에게 직접 말하지 않으면 월별 인사평가점수가 얼마가 나왔건 최하점의 평가를 줄 수 있는 항목이라고 했다. 나는 이러한 제도가 생길 거라고 통보하는 팀장에게 장장 두 시간 동안 이게 얼마나 위험한 것이고, 납득이 가지 않는 항목인지 설명했다. 결론은 물론 늘 그랬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이 지시하는 대로 태도점수는 도입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회사에 대한 스트레스가 매우 커지기 시작했다.
이와 맞물려서 팀장은 점차 나의 업무영역을 축소시키고, 업무 전달에 있어서 패싱 하기 시작했다. 본 업무를 고도화하라는 명분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마케팅 운영 업무들은 모두 운영팀 신입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영상제작자나 이미지 제작자의 채용에서도 더 이상 관여하지 말라고 통보받았다. 이러한 일을 겪었을 때, 나는 공황발작을 겪으면서까지 야근을 했을 때 보다 심적으로 힘들었다. 권력자의 눈 밖에 나게 된 팀원이 이렇게까지 철저히 무시당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 외에도 회의 때나 연봉협상 등 회사의 여러 상황에서 상처받는 말을 듣다 보니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없을 지경이었다.
팀장은 회의 때 종종 '그걸 왜 당신이 해요?' 라던지, 내가 발표하고 있을 때 듣지 않는다던지 혹은 다른 사람의 업무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며 갑자기 말을 끊는다던지 등의 나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어느 날은 해외대학 출신은 채용하면 안 된다는 발언을 내 앞에서 했었고, 최근 사무실 이전에 따라 이사를 하게 되어 공황증세가 심해졌다고 호소하자 그건 스스로가 자신 관리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면박을 줬다. 그와 비슷하게 인사팀장이 연봉협상 시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상승률을 제안하면서 나의 시장몸값이 이 정도 된다고 하는 발언까지 더해져 나의 자존감은 굉장히 낮아졌다.
정신적으로 회사를 더 이상 다니기엔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오랜만에 죽음이나 삶의 의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고, 잠시 나를 되돌아보니 근 3년간 나의 인생에 '나'는 없었고 '회사'만 있었음을 깨달았다.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내가 힘들다는 말만 꺼내기 시작하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고 회사를 당장 관 둘 자신은 없었다. 나는 이 회사를 관두면 한국 사회에서 재취업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이직을 많이 알아보았지만, 다들 서류상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아 미통과된 경험이 대부분이었다. 휴학생 신분인 나는 지금 회사만이 나를 받아주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고민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았고, 가족들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는 등 여러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이미 궁지로 몰린 나는 가족들의 조언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였다.
어느 날 막냇동생과 삶에 대해서 다소 격앙된 분위기로 토른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정신적으로 지쳐있었고, 모든 것이 공허했다. 동생 또한 똑같이 울부짖으며 내게 말했다. '언니처럼 생각하면 삶이 너무 괴로울 것 같아. 사람들은 종종 삶에 있어서 살아있는 것만 있다고 착각하는데, 사실 삶 곁에는 죽음이 늘 있어. 우리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매일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보내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아'라고. 나는 처음엔 동생이 나의 상황에 공감을 해서 같이 우는 줄 알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생은 그러한 이유로 눈물이 나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는 나는 은연중에 남에게서 내 힘든 상황을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어 했다는 것이 충격이었고, 두 번째는 동생의 일침이 너무나도 맞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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