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의 이러한 경험은 내게 있어서 꽤나 큰 이벤트였다. 회사에서의 인정=나의 존재 의의라고 생각해 왔던 지난 몇 년 간의 생각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우선 나는 나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았다. 인생을 돌이켜 보니, 나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는 항상 '돈'이었다. 이를 깨닫자, 나는 약간씩 바뀌기로 마음먹었다. 회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일단 정신병원을 방문해 나의 상황을 정확히 진단코자 했다. 진단 결과 높은 불안증세와 공황증상이 있었고, 나는 진단서를 가지고 회사에 휴직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휴직 신청은 반려되었다. 사유는 진단서에 명확한 기간 동안 휴직을 권고한다는 의사의 소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재택근무로 협의를 보게 되었다.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나는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오늘 하루 살아가면서 생각한 것들을 되짚어보는 생각일기와, 감사한 것들을 적어보는 감사일기를 매일 적기 시작했다. 계기는 물론 동생이 추천해줘서이지만, 이 습관은 꽤나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생각을 되짚는 것이 귀찮았지만, 한 번 되짚어본 생각은 신기하게도 다음날 다시 생각나지 않았다. 이전에 생각한 생각이 만약 생각난다고 해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생각인지라 그 생각 때문에 고민을 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또한 처음에는 무엇에 대하여 감사해야 할지 잘 몰랐지만, 이내 사소한 것에서 감사하는 버릇을 나아가 나에게 감사하는 버릇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되어, 새벽에 일어나던 버릇으로 운동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유산소를 하면서 ‘오늘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책을 리뷰한 영상을 봤다. 영상에서 너무나도 나의 마음을 관통하는 말이 나왔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랴 오늘 하루를 망쳐버리지 마라
인간은 피할 수 없는 불행이 닥쳐올 때 지독하게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이 주어진다고 해도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시간의 내용은 다르고
결국 저마다 다른 결론을 만들게 된다.
때로는 삶에서 마주한 절망적 상황이 우리에게 진짜 삶의 길을 제시해 줄 때가 있다.
내가 지금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나의 생각으로 나의 인생마저 망쳐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간들의 내용을 충실히 해 놔야 같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나는 또다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날 이후로 나는 '현재'의 힘을 중요시 생각하게 되어, 매일매일을 정해진 루틴대로 일정 시간을 살고, 일정 시간은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충실히 살고자 하게 되었다.
이러한 루틴 덕분에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많이 줄일 수 있게 되어, 업무 패싱이나 기타 등등 실언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재택근무의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무렵, 나는 재택근무 기간 연장을 요청하였고 이는 또다시 반려되었다. 관련해서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상태로 인사팀장은 내게 면담을 요청했다.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를 하고 면담을 하러 사무실로 오랜만에 출근하게 되었다.
면담에서 인사팀장은 나에게 권고사직을 제안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은 회사를 관 둘 생각은 없었기에 권고사직 제안은 반가운 제안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인사팀장은 이번달은 권고사직을 제안할 수 있지만 다음달은 권고사직이 아닌 다른 것을 제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무슨 뜻인지 명확하게 하고자 재질문했다. 다른 제안이라 함은 강제성을 띄는 제안을 말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았고, 인사팀장은 맞다고 했다. 이때 나는 회사에 큰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꼈다. 그리고 인사팀장에게 말했다. 회사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인데 이런 식의 제안은 적절하지 못한 것 같다고. 인사팀장은 면담을 여기까지만 진행하겠다고 하며 이야기를 종료했다.
면담 이후 인사팀장은 내게 자신이 힘들었던 이야기를 위로차원에서 몇몇 개 들려주었지만, 이야기를 들을 수록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게 되었다. 인사팀장 또한 내가 힘든 이유가 나 스스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나의 증세와 고민을 잘 알지도 못하는 와중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축소화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이미 회사와 이 인사팀장에게 환멸을 느낀 나는 그저 묵묵히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사팀장과 면담 이후, 대표와도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원에서 진단서를 줬음에도 반려되었다고 전하니 의사선생님이 보통은 다 수렴되는데 이 분이 미숙한 인사팀장이라 반려되지 않았나라고 말을 해주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재택근무가 반려되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또한 이전 공황발작 때는 휴직을 쉽게 제안 주었지만 이번에는 불가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내면적으로는 그 이유에 나의 회사에 대한 불만사항 때문인지를 알고 싶었기도 했다. 대표는 재택근무 연장이 불가한 이유를 이미 한 번 예외사항으로서 재택근무 편의를 봐준 거였고, 그때와 지금은 회사의 상황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예외사항은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순간 '이렇게 망가질 때까지 내가 이 회사를 위해 일을 했는데, 결국 이런 결말이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대표와의 면담 이후 나는 권고사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4월 30일까지 근무하기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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