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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g/💔 공황장애 그리고 퇴사

공황장애 그리고 퇴사 #3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갈 때 즈음, 둘 뿐인 마케팅팀에 드디어 팀장이 생겼다. 인사팀에서도 두 명이서 마케팅을 전부 집행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팀장이 합류하게 된 이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름 체계적으로 마케팅에 시스템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마케팅 소재 업무를 전문화하게 되었는데, 본래의 업무 범주가 번역/문의/영상&이미지 제작/마케팅을 아우르다 보니 생각만큼 마케팅 소재 업무가 심화되기는 어려웠다. 유저와 약속인 업데이트날 이전까지 반드시 해내야 하는 스튜디오 업무를 하다 보면 마케팅 업무를 진행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소재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스튜디오 업무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 단순히 다섯 시까지 정시근무를 하고 퇴근하면서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새벽 세 시까지 매일 일을 해도 일이 끝나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광범위한 업무범위를 가진 나는 어느 팀에도 속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업무 전문화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인사평가에서 최하점을 받게 되었다.

 

이유는 소재 업무 고도화가 되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스튜디오 업무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나는 너무나도 억울했다. 회사가 원하는 대로 일을 했을 뿐인데, 나에게 돌아온 것은 최하점이었기 때문이었다. 면담에서 관련하여 이의제기를 하는 과정에서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밀려나왔다. 내가 아우르고 있는 모든 업무가 평가된 것도 아니었고, 최선을 다한 결과가 이런 평가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면담 이후 평가 누락된 부분이 있었다는 이유로 가산점이 책정되어 최하점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그때부터 나는 회사에서의 나의 포지션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이 많은것과 별개로, 나는 마케팅 업무 중에서도 버짓 얼로케이션이나 신규 플랫폼 관련 업무 등 중요도가 높은 업무를 크게 배분받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나의 메인 업무는 위에서 거론한 중요한 업무를 보좌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업무 고도화를 진행하면서 소재보다는 운영 쪽의 업무가 더욱 중요도가 높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회사의 대부분의 수익과 매출 데이터를 관리하고, 이를 고도화된 분석 방식을 통해 차후의 전략을 구상하는 업무는 어느 기업에서도 선호하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는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특출난 업무 성과를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는 업무가 없었다.

 

이런 불만을 가지고 있던 때, 다행히도 최하점 사건 이후로 나의 업무를 분배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번역과 이미지/영상 제작 업무를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케팅 소재 관련 업무를 집중적으로 고도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인사이트가 쌓인 이후부터는 적정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분야를 실현시키고, 많은 시스템을 제작했다. 무엇보다 나의 업무시간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도록 업무 자동화를 이루어냈다. 당시 진행한 팀장과의 월간 면담에서, 추후 마케팅 운영과 소재팀 중간에서 활약하는 포지션으로 업무를 발전시키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포지션이 나에게 딱 맞는 포지션이었다. 영상이나 이미지 제작을 해 봤으면서 마케팅 집행 경험이 있는 사람은 커리어적으로도 드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날 팀장이 나와 사수를 불러내어 '각자 잘하는 스킬을 활용해서 특화시켜 보자'라고 말했다. 급작스러운 질문에  둘 다 선뜻 입을 열진 못했지만, 이내 사수는 이전에 코딩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my sql을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팀장은 사수에게 게임 내부데이터와 우리가 보는 지표 데이터를 비교하는 쪽으로 커리어를 디벨롭해 보자고 제안해 주었다. 그렇게 미팅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나의 차례가 다가왔고, 나는 일단 떠오르는 대로 4개 국어를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팀장은 4개 국어를 한다고 해도 그 능력은 마케팅에서 쓰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나의 언어 능력과 외국인의 언어 능력을 비교했을 때 전혀 메리트가 없다고 대답했다. 면전에서 남의 능력을 이렇게도 뻔뻔하게 평가절하하다니, 큰 충격이었다. 나는 흔들리는 정신을 다시 잡고 소재 제작경험과 마케팅 집행 경험 둘 다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팀장은 이미 그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새로운 점이 아니라고 했다. 이후 뾰족한 결론 없이 이야기가 마무리되었고, 이 사건은 계속해서 나의 머릿속에 맴돌아 한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거론한 나의 장점들은 데이터적으로 활용되기 어려운 장점들이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능력들은 아니다. 어쩌면 그는 데이터에 활용하는 능력을 애초에 염두하고 이 질문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일은 나의 자존감을 크게 깎은 경험이 되었다.

 

이후에 자존감이 낮아진 나는 월초마다의 인사평가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회사가 커짐에 따라 인사팀을 포함해 리더진이 생기게 되었다. 그들은 다른 회사의 업무평가 방식을 그대로 채용했는데, 그것이 바로 본격적인 월별 인사평가 시스템이었다. 어느 회사보다 정량화된 수치를 선호하던 우리 회사는 정량평가로 모든 사원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주관적인 평가를 정량평가랍시고 점수를 책정하는 모순이 나에게 있어서 큰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기억나는 항목 중 하나로는, 앱 스토어에서 보이는 게임 프로모션 영상의 퀄리티가 낮다는 이유로 감점이 되었을 때가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촉박한 일정 때문에 어떤 영상이라도 첨부를 해야 했던 터인지라 높은 퀄리티의 영상을 제작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당연히 이의를 제기했으나,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팀장인 자신이 볼 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 대답만 들었다. 영상을 제작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퀄리티를 운운하는 게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평가점수나 나의 포지션 관련하여 월 면담 때마다 팀장에게 많은 의견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평가 점수 책정 방식에 큰 의문을 가졌던 나는, 지속적으로 정량평가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처음에는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 시작한 토론이 결국은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며 결론이 나지 않는 대화로 매 번 끝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팀장과의 대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면담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결론적으로는 상명하복의 업무지시로 이야기가 끝날 뿐이었다. 급하게 성장한 회사인 만큼, 빠른 템포로 다양한 업무가 계속되는 환경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스케줄 조정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얼마나 일이 쌓여있는지를 전혀 모르는 팀장에게서 개인 메신저로 업무 지시가 일방적으로 내려올 때,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용이 뭐가 되었든, 팀장에게서 메시지가 오면 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몸 상태 변화를 눈치챈 나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약 10일간 부모님이 계시는 일본으로 여름휴가를 길게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