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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g/💔 공황장애 그리고 퇴사

공황장애 그리고 퇴사 #4

회사 규모가 급격히 커지게 되어, 사무실에 모든 직원이 들어갈 수 없는 날이 왔다. 그래서 근처 대여한 공유오피스에서 마케팅팀은 따로 근무하게 되었다. 마침 이삿날이 휴가였던지라, 복귀 이후 나는 새로운 사무실로 출근하게 되었다. 새 사무실에서 나는 팀장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팀장의 근무태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나는 업무가 너무 많아서 허덕이는데 옆자리에서 지렁이 키우기 게임, 핸드폰, 미드를 보고 있는 팀장이 있으니 업무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한 번은 회사에서 신규 게임 론칭 기념으로 게임 캐릭터의 레고를 전 사원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근무시간 내내 레고를 조립하는 팀장의 모습을 옆에서 직관하고 있자니 속이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팀장은 굉장히 자주 지각을 하곤 했다. 같은 마케팅팀에 지각 때문에 권고사직을 받은 팀원이 있음에도, 팀장이라는 이유로 지각에 대한 어떠한 페널티가 없음이 이해가지 않았다. 소재 관련된 실무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그렇다고 성실하지도 않은 팀장에 대한 불신은 나날이 깊어만 갔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나와 긴밀한 협업을 하고 있던 영상제작팀은 인력난과 과도한 업무량으로 불만이 많았다. 영상제작팀은 다른 팀과 비교해 보았을 때 권고사직률(혹은 해고율?)이 매우 높은 팀이었는데, 이유인즉슨 마케팅 집행된 영상이 많은 광고 예산을 소진하지 못하면 낮은 평가를 받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퀄리티가 좋은 영상을 만들어 봤자, 머신러닝으로 인하여 자동으로 배분되는 광고 예산을 많이 소비하지 못하면 그 영상은 '좋지 못한 영상'취급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영상 제작 업무는 점점 자극적이고 퀄리티가 낮은 영상을 대량으로 제작하는 업무 형태를 띠게 되었다. 문제는 좋은 퍼포먼스를 내는 영상은 대부분 일정 시간을 소비하여 제작한 영상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장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상은 늘 더욱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는 팀장의 지시에 영상제작자들은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팀장은 영상 소재 회의에서 간혹 실현시킬 수 없는 영상 제작을 주문하거나, 영상을 좌우반전 시켜보라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발언을 종종 하곤 했다. 나름 모종의 근거로 의견을 낸 것이었겠지만, 당시 지쳐있는 팀원들에게 그러한 업무 지시는 더더욱 의욕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물론 주문대로 제작 시 좋은 퍼포먼스를 낸 영상이 없었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팀장은 영상 제작 평가 방식을 크게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나와의 개인 면담에서 팀장은 영상 제작자들은 주 40시간만 일하는데, 개발팀은 50시간 이상 일하기 때문에 영상 제작팀은 열심히 일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방지하고자 업무량을 늘려 자연스럽게 주 초과시간 근무를 내가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회사 측에서 초과근무를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이상의 업무량 증가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팀장과 굉장히 많은 토론을 벌였다. 팀장은 내게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회사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50시간 근로 계약을 맺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40시간 이상 근무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똑같은 입장으로 팀장의 요구를 거절했다. 돌이켜보면 이 상황이 팀장인 자신은 나서지 않으면서 나를 조종하여 자신의 의도대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하는, 이른바 가스라이팅에 해당되는 사건이었다.

 

몇 주간 이 문제로 서로 간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당시 나는 업무상 크리에이티브팀 (영상과 이미지 제작을 담당해 주는 제작팀)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내게 파트장을 하고 싶으면 회사 입장에 서라고 말했다. 이미 파트장과도 같은 업무를 하고 있기도 했고, 딱히 직급에 욕심은 없었기 때문에 팀장의 말이 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문제는 팀장이 이 건으로 자주 나를 따로 불러내어 설득을 하려고 했는데, 이 시간이 내게 있어서 큰 스트레스였다. 한 시간이 넘도록 나의 인식 체계가 이상해질 만큼의 회사주의 & 상명하복식의 말을 듣고 있자니 정신에 이상이 올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나의 평가도 아닌, 타인의 평가에 대해서 안 그래도 부족한 업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나는 이러한 문제 관련해서는 영상제작자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고, 처음에는 반대하던 팀장도 결국 이를 수용했다. 그렇게 소재회의에서 팀장이 변경코자 하는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영상제작자들은 당연하게도 불만을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제의가 오고 갔다. 결국 더 이상 영상 제작 속도에 대해서 과도하게 평가하지 않도록 타협을 보면서 팀장이 제의한 방식을 일부 수용했다. 이 일로 영상 제작팀의 팀장에 대한 불만은 더욱 커졌다. 나는 토론 과정에서 보이는 실무에 대한 무지를 보고, 이 팀장은 나의 커리어를 이끌어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팀장은 마케팅 운영 관련해서는 지식이 많았지만, 영상이나 이미지를 제작해 본 경험이 없었기에 실무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초반의 나는 이러한 팀장의 부분을 보조해주려고 하였으나 이해 부족에서 발생한 무리한 업무 지시 때문에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팀장과의 여러 의견충돌을 겪으며 이는 오히려 리더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현재 크리에이티브 관련된 모든 시스템을 내가 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큰 도움을 주지 못한 팀장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가 방식이 바뀌게 되고, 얼마 있지 않아 회사에서 큰 소식이 들려왔다. 주요 실무자들이 하나둘씩 이탈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 평가점수에 대한 불만은 나나 크리에이티브 팀뿐만이 아니었다. 회사적으로 큰 불만이 많았고, 블라인드에 악평이 달리기 시작했다. 잡플래닛 등 타 사이트에도 많은 악평이 달렸기에 인사팀에서도 이를 인지했는지 전사적으로 회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나는 회사가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에 솔직하게 내가 생각하는 회사의 문제점과 불만을 적어냈다. 이는 돌이켜보면 최악의 선택이었다. 기명으로 작성된다고 해도 나의 의견을 떳떳이 적어냈던 나에게 곧바로 대표와의 면담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공황발작의 요인이 된 대표가 나를 따로 불러내어, 제출한 설문지를 한 문장씩 읽어가며 취조에 가까운 면담시간을 가졌다. 거의 한 시간 동안 이어진 해명시간 동안 나는 굉장히 불편했다. 물론 그 자리에서 문제를 축소하거나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진솔하게 꺼내놓았지만, 이후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