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사직의사를 밝혔다. 공황장애 발병 거의 2년 만에 나는 이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 회사를 다니면서 공황장애와 그 외 심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작년 여름부터 점점 팀장과 의견불일치가 심화되었고, 연말부터는 아예 냉랭한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최근 몇 개월 동안 이해가 가지 않는 회사 측의 행동으로 더더욱 공황증세가 심해졌다. 나는 휴직을 요청했고, 회사는 반려했다. 사유는 진단서가 아니라 소견서를 제출했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8주동안 상담받으면서 나온 결론인 최종 진단서와 의사의 소견을 적은 소견서는 다르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회사측에서 사정을 참작하여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한 달간의 재택근무 후, 사무실을 판교로 이전하면서 다시 통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나는 재택근무 연장을 신청했지만, 회사는 또다시 나의 요청을 반려했다. 사유는 이전과 같은 이유였다. 나는 먼저 인사팀장과 면담을 했다. 현재 나의 상황이 어떤지, 이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등을 설명했다. 중간에 손이 떨려서 말을 제대로 못 했다. 인사팀장은 중간에 면담 내용을 녹음했지만, 이내 녹음기를 끄고 나에게 말했다. 인사팀장은 내게 권고사직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에 나는 권고사직은 반갑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니 인사팀장은 이어서 말했다. 이번 달은 권고사직을 권유드릴진 몰라도, 다음 달에 같은 권유를 드리긴 어려울 것 같다고. 나는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다음달엔 회사 입장에서 내가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해고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나는 회사 때문에 병을 얻었음에도 권고사직을 거절할 정도로 일에 아직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 그러한 통보는 적절하지 못한 말이라고 답했다. 인사팀장은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진행하자며 면담을 종료했다.
오랜만에 회사일 관련해서 사무실 근처로 온 만큼, 회사사람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권고사직을 권유받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권고사직이 이후 내 커리어에 오점으로 남을까 봐 자진퇴사한다고 말했다. 채용 시 인사팀이 종종 권고사직 코드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곤 했는데, 이 과정에서 권고사직 이유를 명확히 하지 않았던 지원자에게 추가질문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후 식사가 끝나고 동료 사원에게서의 충고를 받았다. 오히려 그 동료는 내가 두려워하는 국민건강보험 코드관련해서는 전혀 문제 될 게 아니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자진퇴사보다 권고사직이 금전적으로 이득이 많다고 전해주었다.
나는 회사에 불만을 토로하는 한국 사회에선 잘못된 일이었는지 동료에게 물었다. 그 동료는 회사에게 불만을 가지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는 대단한 것이고, 이를 얼마나 회사가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나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에 불만을 제기할 순 있지만, 바꾸는 것은 그들의 몫이기 때문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화를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실 회사는 월급만 밀리지 않고 잘 나오면 회사로서의 책임을 다 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회사에 큰 기대를 하지 말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에서의 자기 커리어 발전인데, 지금 팀장은 나의 일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배울 것이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나의 커리어를 잘 이끌어줘서 내가 개선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회사이기 때문에 퇴직이 좀 더 현명하다고 조언해 주었다. 이 이야기를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몇 시간 후 대표와 인사팀장과 함께 면담을 했다. 지난 번 공황발작 때에는 휴직을 권유했지만 어째서 이번에는 반려가 된 것인지 물어보았다. 회사측의 입장은 이러했다. 나의 상황이 이례적인 상황이고, 나이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한 달간 재택근무를 허락했다. 하지만 현재 회사 상황은 이전과 다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예외는 없다고 대표는 말했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고, 아까 권고사직이 유리하다고 충고해 준 동료에게서 카톡이 와있었다. 권고사직으로 인한 실업급여를 계산해보니 확실히 자진퇴사보다 금전적으로 유리했다. 약간의 계산을 마친 나는 마음을 결정했다. 권고사직 권유를 수락하자고.
인사팀장과 한번 더 만나서 면담을 했다. 그리고 인사팀장에게 권고사직 제안을 수락하고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는 그렇게 4월 30일까지만 근무하게 되었다.
기분은 매우 좋다.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5월부터 무얼 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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